그 화가의 창밖 풍경
- 아돌프 디트히리
이소영(아트메신저)
‘Birds on riser’(1944)
창문(窓門)을 좋아한다. 어느 곳이든 창이 있으면 그곳을 향해 한숨들을 버리는 습관이 생겼다. 창문 밖으로 곪아터진 내 생각들을 내보내고 싶어서다. 글이 잘 안 써지거나 기분이 우울할 때도 창문 밖 세상을 바라본다. 그래서인지 나는 화가들이 그린 창문들도 좋아한다. 그들이 보았던 수없이 많은 풍경을 나도 함께 보는 기분이다.
스위스 화가 아돌프 디트히리(Adolf Dietrich, 1877-1957)가 그린 창문 풍경이다. 설탕 같은 눈이 쌓인 어느 겨울 아침이다. 창문 앞에 새들이 모이를 먹기 위해 모여 있다. 화가는 새들을 위해 모이를 주었을 것이다. 화가는 관객이 되어 새들을 바라보고 그림에 담았다. 우리는 화가가 재현한 그림을 다시 바라본다. 다소 평범한 이 상황이 하나의 그림으로 보일 수 있는 이유는 창문이 액자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는 어떤 장면이나 풍경을 보고 ‘그림 같다’고 말하거나 ‘예술이다’ 라고 말한다. 소소한 장면도 어느 순간 지극한 아름다움이 되어 다가온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스위스 콘스탄스 호수 근처, 가난한 농촌 마을에서 일곱째 막내로 태어난 아돌프 디트히리는 평생을 노동자로 살았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그는 농장일과 섬유공장 일을 병행했다. 그가 유일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은 일요일 하루뿐. 그마저도 재료가 부족했던 탓에 도화지 대신 판지를 주워 그렸고 한장의 종이에 앞뒤로 그림을 그리는 일도 많았다.
그가 사랑했던 주제는 풍경과 자연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림을 보면 화가는 집 안에 있으면서도 새들과 함께 있는 듯하다. 그림 속 창문은 우리에게 안정감과 해방감을 동시에 준다. 내부이면서도 외부이고 외부이면서도 내부인 창문은 나와 세상을 연결해주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그의 작품 속 창문을 통해 바깥세상과 내 곁의 세상을 본다. 한장의 유리를 두고 두 세계가 공존한다. 창문 덕분에 우리는 두개의 세상을 동시에 살아간다.
2017. 9.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