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는 왜 빈 공장에 들어갔을까?
- 전진경 『빈 공장의 기타 소리』 (창비 2017)

김장성(그림책 작가)

사뭇 시적인 제목의 표지 위에서 ‘투쟁조끼’를 입은 노동자들이 거대한 전자기타를 만들고 있다. 브리지를 손질하는 이, 음향버튼을 다는 이, 몸체를 매끈하게 다듬는 이, 기타줄을 나르는 이, 어깨끈 고리를 세심하게 조립하는 이, 기타 머리를 맞들어 옮기는 이들… 이 부감그림이 그려지는 동안, 이들의 얼마쯤 위에는 화가의 집중한 얼굴이 머물고 있었으리라. 그림 속 한 노동자가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을 맞추고 있다. 화가의 이름은 전진경이다.

빈 공장은 어디인가. 잘 나가는 회사를 위장폐업하면서 노동자 전원을 해고하고 나라밖에 새 공장을 차린 콜트콜텍 기타의 폐쇄된 부평 공장. 해고노동자 7명의 항의농성이 5년 넘게 이어지던 2012년 4월의 초입, 화가 전진경이 화구 가방을 메고 이 공장을 찾아왔다. 그가 이곳에 작업실을 차리고 노동자들과 함께 지낸 열달의 이야기가 이 그림책을 채운다. 뭔 그림책이 그런 이야기를? 그런 이야기가 현실이니까, 예술은 현실을 담아내니까.

폐가, 폐교, 폐공장… ‘폐’자 들어가는 건물에 들어가본 사람은 안다. 그곳이 얼마나 쓸쓸하고 거칠고 위험해 보이는지. 노동자들이야 일터를 되찾고자 그곳에 남았지만, 화가는 어찌하여 그곳을 찾아들어갔을까? 책 속에서 화가가 대답한다. ‘빈 공장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내 몸을 통째로 삼킬 것같이 크고 어두운 그곳에 용기 내어 들어가는 순간, 뚜렷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서 예술을 하면 멋진 게 나올 거야, 분명!’ 그래서 그는 어떤 예술을 했나. 물론 그림을 그렸다. 낙타도 그리고 기타도 그리고 노동자들도 그렸다. 그리고 그보다 멋진 예술, 안간힘 쓰는 노동자들과 더불어 삶.

더불어 산다는 건 그런 것이다. 가릴 것은 가리고 보여줄 것은 보여주며 서로 알아가는 것, 있는 것은 주고 없는 것은 받으며 서로 정들어가는 것, 그리하여 같이 있어 좋아지는 것. 이들도 그랬다. 다이어트를 핑계로 겸상을 사양하던 화가는 보름째 되는 날 노동자들이 부쳐준 부침개를 받아먹는다. 첫 대면에 “우리도 안전치 않은데 다치면 책임질 수 없다”던 노동자들은 전등을 달아주고 밥을 권하더니, 자신들이 만든 밴드의 서툰 공연 영상을 자랑하고 딸아이가 보내온 문자메시지까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이 왜 몇년째 이 황량한 공장을 지키며 싸우고 있는지를 조근조근 들려준다. “이 공장에서 24년 동안 기타를 만들었어. 사람은 누구에게나 명예가 있어. 노동자에게도 명예가 있어. 사장은 그걸 몰라. 함부로 해고하고,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해…… 나는 쉬지 않고 증거를 찾고 있어. 공장문을 닫고 우리를 해고한 게 불법이라는 증거 말이야. 잘못을 알리고 당당하게 일자리를 되찾을 거야.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아.” 그렇게 마음속에 태풍을 품고서도 저마다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내는 노동자들과 같이 있는 게, 화가는 좋았다. ‘여기에 오길 잘했어.’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입주 300여일이 되던 2013년 2월의 첫날, 용역깡패들이 몰려왔다. ‘우리’는 끌려나오고 공장은 부서졌다. 노동자의 갈비뼈가 나가고 화가의 낙타 그림이 사라졌다. ‘우리’를 도와줄 줄 알았던 경찰들은 구경만 했다. 용역과 경찰과 높은 펜스로 이루어진 거대한 벽 앞에서 화가는 떠올렸다. 노동자들이 들려준 해고되던 날의 심정. “어쩔 줄 몰라서 한동안 문 앞에 계속 서 있었어. 너무 화가 났는데 또 두려웠지.”

그래서 이야기는 끝났는가? 싸움이 끝나지 않는 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명예가 회복되지 않는 한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일자리를 되찾지 않는 한 명예는 회복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가만있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길거리에 천막을 치고 오늘까지도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화가는 주마다 천막을 찾아가 그림을 그린다. 헤어질 때 그들은 손을 흔들어 인사를 나눈다. 굳은살 박인 손과 물감 얼룩진 손.

더불어 자본의 탐욕이 비워 버린 공장을 채우던 그 손들은, 지금도 더불어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고 있다. 화가는 이 그림책으로, 노동자들은 그들의 음악으로. 숙련 정도는 다르나 둘은 똑같이 당당하고 치열하고, 진정한 ‘예술’이다. 궁금하다면 이 그림책을 찾아 읽어 보시라. 노동자 밴드 ‘콜밴’의 음악을 찾아 들어보시라.

2018. 1. 29

* 이 글의 축약본은 한국일보(2018.1.11)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