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털로 된 아침 식사 함께할까요?
- 메레 오펜하임(Meret Oppenheim)

이소영(아트메신저)

찻잔이 털을 입었다. 찻잔뿐 만이 아니라 스푼과 접시도 세트로 함께 털을 입었다.

단지 찻잔의 재질감만 바뀌었을 뿐인데 다시 봐도 새로운 이 작품은 메레 오펜하임(Meret Oppenheim, 1913~85)의 1936년 작이다. 그녀는 고작 스물셋의 나이에 이 작품을 제작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 작품은 모순된 이미지 표현을 즐기는 초현실주의의 대표작이 되고 같은 해에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구입한다.

오브제, 모피로 된 아침식사, 1936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낯설게하기’인데, 이 작품 역시 하나만 비틀어도 매우 낯설어지는 공식이 반영되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완성한 회화 작품은 많지 않지만 강렬하듯이, 오펜하임은 이 작품 하나로 묵직한 존재감을 세상에 남겼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누구나 만지고 싶게 하는 이 작품은, 사람들의 시각에 촉감을 담도록 제안한다.

작가는 왜 찻잔을 털로 덮었을까? 따뜻함과 부드러움이라는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함이었을까? ‘찻잔’과 ‘모피’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후일담에 따르면, 그녀는 피카소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피카소를 만났을 때 그녀는 털이 있는 팔찌를 하고 있었는데, 피카소가 그 팔찌를 아주 흥미로워했다고 한다. 그걸 계기로 오펜하임은 즉시 파리의 한 백화점에서 찻잔과 받침을 구입하고 중국 영양의 털로 감싸서 작품을 완성한다. 털로 감싼 찻잔 속 음료를 담아 먹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묘하고도 불편한 상상을 하게 만듦으로써 이 작품은 순식간에 완벽한 초현실주의 작품이라고 평가받는다.

베를린에서 의사 아버지와 스위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오펜하임은 스위스 바젤에서 공부하고 1932년 열아홉살 때 파리로 가서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당시 파리에는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많았는데, 그중 한스 아르프와 앙드레 브로통이 그녀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고, 알베르토 자코메티 역시 그녀에게 큰 영향을 준다. 실제 그녀는 자코메티의 귀를 본뜬 청동 작품(1933)을 만든다. 자코메티와 아르프는 앙데팡당 초현실주의 전시회에 그녀를 초대해 함께 전시하기도 했다. 아래는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만 레이의 모델을 서주었을 때의 작품이다. 하지만 그녀는 실제로 초현실주의 그룹에 가입하지는 않았다. 어떠한 화파에 종속되어 활동하는 것이 과도한 감정의 몰입이라 느꼈던 듯하다. 때로는 화가가 남긴 말이 그 화가의 작품을 이해하는 지도가 되어주기도 한다.

메레 오펜하임, 루이 마르쿠시(Louis Marcoussis), 29.0 x 22.2 cm

”자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해야만 하는 것이다.“

실제 그녀는 ‘자유’를 중요시했기에 이것은 그녀의 작품을 읽는 키워드가 될 수 있다. 요제프 헬펜슈타인이 그녀에 대해 쓴 책 『메레 오펜하임과 초현실주의』의 서문 역시 그녀가 초현실주의자 그룹에 속한 작가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유연성 없는 그림 기법, 그리고 냉정하고 비서정적인 표현 형태는 비장하게 선언한 초현실주의자들을 향한 답변이다.”

그녀는 세간의 이목을 받자 스스로 작품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하며 침체기에 빠진다. 너무 큰 명작을 남긴 부담감으로 다음 작품을 진행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파리에서 높은 명성을 얻은 후, 그녀는 약 18년간 우울증에 시달린다. 화가의 꿈을 안고 간 파리에서 초현실주의자들의 조수로 예술활동을 시작한 그녀가 갑자기 그들의 스타가 되었기에 깊은 심리적 부담도 함께 왔을 것이다. 그녀는 결국 1937년 자신의 정신적 고향 바젤로 돌아간다.

그녀는 「털로 된 아침식사」를 발표한 이후 바젤에서 지낸 2년은 디자인 학교를 다니며 미술품을 수리하고, 가구와 공예에 관심을 쏟기도 하다가 약 20년간 작품활동을 중단한다. 아래의 작품은 막스 에른스트와 레오노르 피니와 함께 만들어 가구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1939)이다.

새의 다리를 지닌 테이블, 1939

1945년에는 훗날 남편이 된 볼프강 라로슈를 만나고 화실을 오픈한다. 그러고서야 비로소 좀더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한다. 1956년에는 피카소가 무대미술을 맡은 연극 「꼬리를 잡기 원함」의 베른 공연에서 가면과 의상을 디자인하고, 1959년 친한 여성작가들과 함께 여성 나체 그룹을 만들어 활동한다. 그후 1980년대 유럽과 뉴욕, 일본에서 여러 전시회를 열고, 책을 출간해 작가로도 활동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85년 11월 15일, 저서 『파리에서의 캐롤린』 출판기념회 날 세상을 떠난다.

남긴 작품이 많지 않고 순수한 조형 작품으로는 거의 「모피로 덮은 찻잔」이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간이 흘러도 이 작품은 사람들에게 초현실주의와 페미니즘에 화두를 던지는 트레이드마크가 된다.

찻잔 형태를 털로 감싸고 있지만, 따뜻함을 지닌 이 작품에서 나는 진정한 여성성은 무엇인가? 생각한다. 오펜하임은 어쩌면 남성들로 가득한 그 시대의 화단에 여성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로 강한 여성성을 작품에 담아낸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면 찻잔도 우리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털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가 이야기하고 싶던 강한 여성성은 ‘부드러움’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강한 것은 꺾이고 때로는 부서지지만, 부드러운 것은 감싸고, 구부러질지라도 다시 펴진다. 그녀는 「털로 된 아침 식사」를 통해 부드러운 것은 약한 것이 아니라 가장 따뜻하고, 언제든 다시 튼튼해질 수 있으며, 무엇인가를 포옹하고 감싸는 힘이 있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딱딱한 찻잔을 부드럽게 만들어버림으로써 작가는 여전히 우리에게 색다른 사고와 화두를 던져준다. 누군가의 부인으로, 누군가의 엄마와 딸로, 하지만 사회에서는 일하는 여성으로 오늘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오펜하임은 남성성으로 대표되는 딱딱하고 경직된 것보다 부드럽고 따뜻한 것이 더할 나위 없이 강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1975년 오펜하임이 바젤시로부터 미술상을 받을 때 남긴 말이 인상적이다. 그녀의 조형 언어는 오랜 시간 우리에게 메아리가 되어 되풀이되고 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고유한 언어로 말하는 사람은 메아리가 되돌아올 때까지 얼마 동안은 기다려야만 한다.”

2018. 12. 14

* 작품 출처: 위키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