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가 갖는 십 대의 풍요와 결핍
- 영화 「벌새」와 「레이디 버드」

조해진(소설가)


맞아요, 영화란 것이 그렇습니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와 작품성을 떠나 스크린 바깥의 것들―그러니까 그 영화를 본 극장의 분위기, 누군가와 함께이거나 혼자 그 영화를 볼 때의 마음, 몰입된 장면에서 환기되는 나의 어떤 시절, 그리고 엔딩 곡과 자막을 신호로 현실의 스위치가 켜질 때의 아연함으로 기억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극장에서 본 영화들의 목록은 특별한 날의 사진들을 모아놓은 앨범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여섯 살이거나 일곱 살 때 영문도 모른 채 엄마와 엄마의 친구―나는 오랫동안 그분을 나의 친이모로 알고 있었습니다―를 따라 처음 극장에 가본 기억은 남아 있지만 제가 본격적으로 영화를 극장에서 향유하기 시작한 건 성인이 된 후부터였어요. 그럼 중학생이거나 고등학생 땐 뭘 했느냐고요?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과 우르르 시내에 있는 극장을 찾아간 적도 있지만 그런 일은 퍽 드물었고 그때 본 영화는 할리우드에서 생산되는 전형적인 영웅담이었기에 제 감성과 그리 맞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시절 극장에 간다는 건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한, 조금은 의무적인 연례행사 같은 것이었죠. 소읍의 극장들을 헤매고 다니며 황금기 홍콩 영화를 섭렵한, 질풍노도의 시기를 극장의 시간으로 지나온 시인님이 부럽다고 말하고 싶은데, 시인님은 이런 말에 혹 난감해할까요.

영화 「벌새」(김보라, 2019)를 보면서도 그런 부러움을 느꼈답니다. 1994년, 겉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웠지만 안에서는 차츰차츰 경제구조가 허물어지던 때, 김일성이 죽고 성수대교가 붕괴되던 그 문제적인 해, 열네 살의 은희는 연애와 우정과 반항과 흠모와 상실을 모두 경험하죠. 1994년, 1980년생인 시인님은 그해의 은희보다 한 살 많은 열다섯 살이었을 테지요. 저는 그때 아침 7시 등교와 밤 10시 하교라는 일상의 궤도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던 고3 수험생이었습니다. 맞아요, 햇살에 빛나는 풍경에 차단된 채 웃음을 잃어가던, 시침이 너무 느리게 움직이는 이상한 시계를 차고 다니던 시절이었죠.
영화를 보고 나서 왜 제목이 ‘벌새’일까 생각했습니다. 저와는 다른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는 신미나 시인에게 그 이유를 아느냐고 물으니 벌새는 새 중에서 가장 작고 초당 80회가 넘는 날갯짓을 한다는 힌트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벌새가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아 좋았다는 말도 해주었죠. 그제야 감독의 의도를 조금은 알 것 같더군요. 은희는 열네 살 소녀의 표준인 듯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그 작은 세계에서 계속해서 날갯짓을 하고 있잖아요. 학교에 갈 때마다 생존을 걸고 재개발에 반대하는 문구를 봐야 하고 사랑은 마음처럼 되지 않고 사람들은 너무 쉽게 떠나가고 오빠라는 폭력은 꾸준히 은희를 괴롭히죠. 그 평범한 결핍이 저에게는 오히려 풍요로워 보였다고 한다면 옛날이 싫었다고 말하는 부류가 되는 걸까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1994년의 내게도 은희의 세계와 겹쳐지는 지점이 있긴 합니다. 고민이 있으면 달려가서 다 털어놓고 싶은 선생님이 있었고 영원할 줄 알았던 단짝 친구와의 유대가 갑자기 무너지는 걸 경험하기도 했으며, 가정과 학교에서 가끔은 왜 맞는지도 모른 채 맞기도 했습니다. 마치 은희처럼. 신나게 웃으며 떠들다가도 과잉된 불안과 허무 때문에 갑자기 얼굴이 어두워지고 했겠지요. 은희와 은희의 친구들처럼.

「벌새」를 보고 떠오르는 영화가 있었는데 그레타 거윅 감독의 「레이디 버드」(2018)였습니다. 두 영화가 비슷한 건 감독의 취향이나 깊이와 상관없이 십 대의 풍요와 결핍이 시대나 지역을 뛰어넘어 비슷해서일 것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모든 사람, 모든 환경, 모든 사건에 휘둘리고 아파하면서도, 또 누구보다 환하게 웃을 수도 있는 시절……. 그래서 관객들도 자칭 ‘레이디 버드’인 크리스틴과 은희에게 공감하고 그들의 미래를 응원하는 것이겠지요. 스크린 안 그들을 보며 닮았구나, 말할 수 있는 조각이 들어 있으니까. 그러니 조금은 장담할 수 있습니다. 철원 읍내의 극장들을 순례하며 어둠 속에 혼자 앉아 있기를 자청한 김현과 서울의 강서 지역에서 뜨거운 얼굴을 숨긴 채 어서 학교를 떠나고 싶다는 마음으로만 버티던 나, 우리는 생의 어떤 모서리에선 같은 영화를 보며 같은 표정으로 같은 생각을 했으리란 것을요. 웃음의 결과 울음의 자세가 같았다는 것도요.

그리고 지금, 자기 생뿐 아니라 이 세계의 못난 모습에도 책임을 져야 하는 이 나이가 된 지금,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십 대에 그 나이에만 행할 수 있는 반항과 모험과 무모함을 모르는 것은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요. 이런 생각을 하는 한, 시인님, 우리는 분명한 옛날 사람이겠지요. 옛날 사람이면서 동시에 곧 옛날이 될 현재를 사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추신:
대상포진을 이겨내고 보내준 편지에 담긴 시와 영화, 고마워. 본 것은 본 것대로 되새기고 못 본 작품은 시차를 두고 꼭 챙겨볼게. 「능금을 들고 있는 밝은 현이」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면서. 그런데 현아, 해변에서 행복해지고 싶다고 생각하며 우두커니 서 있었을 너의 실루엣은 다시 내게 작품을 쓰고 싶다는 소망을 안겨준다. 엔딩 신에서 클로즈업되는 배우의 뒷모습처럼 나는 며칠 동안 상상 속 그 장면을 가만히 들여다보곤 했어. 나는 이 장면을 가슴에 안고 있다가 (너만 괜찮다면) 문장으로 쓰고 싶다. 쓰게 되면, 그때 알려줄게.
가을에는 부디 아프지 말렴.

2019. 9.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