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회복기의 노래
지난겨울,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한 달 만에 할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연달아 두 사람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많은 이들이 빈소에 찾아와 주었다. 아버지가 살고 있는 울산에 장례식장이 있어 모두 먼 길을 와야 했음에도 하나둘 늦지 않게 도착하던 고마운 얼굴들을 기억한다. 특히 할머니 장례를 치르던 며칠은 날이 몹시 추워 나를 안아주던 이들의 옷에서 찬 기운이 느껴졌다. 그 차가움이 고맙고 미안했다. 사람들이 예를 갖춰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 동안 나도 영정사진을 보며 마음속으로 말을 걸었다. ‘이 친구는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도 놀러 갔던 친구인데 기억나?’, ‘이 친구들은 서울에서 왔어. 엄청 먼 데서 왔지?’, ‘나랑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야.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했지?’. 그러면 대답을 들을 수는 없어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반가워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힘으로 빈소를 지킬 수 있었다.
가까운 존재를 떠나보낸 상실감은 장례 절차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왔을 때 비로소 밀도 높은 슬픔으로 찾아왔다. 통화 기록에 남아 있는 할아버지의 부재중전화, 벽에 붙어 있는 할머니 사진을보고무너지듯 눈물이 쏟아지다가 어느 순간엔 눈물도 나지 않고문이 닫힌 아주 고요한 방에 남겨진 기분이 들었다. 그럴 땐 세상이라는 것이 아주 멀고 불투명하게 느껴졌다. 그즈음 내가 가장 자주 느낀 감정은 허무함과 무서움이었다. 어떻게 한 존재의 삶이 이렇게 끝나버릴 수 있는지. 이러한 상실을 계속 겪어야 하는 게 삶이라면, 산다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어떻게 다시 삶을 믿고 살아갈 수 있을지.
한동안 사람들은 내게 많은 말을 들려주었다. 지금쯤 할머니 할아버지는아픔도 고통도 없는 곳에서 편안해지셨을 거라는 말. 새가 되어 훨훨 날고 있을 거라거나 꿈으로 다녀가실 거라는 말. 분자로 이루어진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다시 만나게 될 거라는 말. 기억하는 한 계속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말. 고인을 그리워하면 천국에 있는고인머리 위로 꽃비가 내린다는 말.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여전히 이어져 있는 존재라는 말. 그러므로 우리는 영영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
“있잖아. 최근엔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라며 함께 걷던 B 선배가 들려주었던 말도 기억한다. 두 번의 장례식 모두 발인까지 함께 해준 선배였다.
“그동안 나는 우리 엄마를 봐도 그렇고, 왜 노인들이 죽음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지 늘 궁금했거든. 그런데 이제는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아.”
“왜 그런 것 같아요?”
“그건 이미 삶에서 여러 번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냈기 때문 아닐까.노인들은 생각하는 거야.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나도 가는 것, 그게 죽음이라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그동안 보고 싶었던 사람들 다 만나고 있을 거야. 그리고 언젠가 너도 만날 수 있겠지. 그때까지 우리는 우리 삶을 살아가는 거야.”
먼 곳에 사는 이들은 평소보다 자주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고, 가까이 있는 이들은 편하게 울 수 있도록 조용히 옆에 있어 주었다. 친구가 챙겨준 도시락을 며칠 동안 나눠 먹으며 여러 곳에서 편지와 함께 보내준책들을 꼼꼼히 읽었다. 추천해 준 영화와 노래를 보고 들었고, 할아버지를 추억하는 의미를 담아 친구가 선물해 준 램프를 켜두고 잠이 들었다. 친구가 들려주는 기도 내용에 두 손을 모았고, 동료들과 루틴을 정하고 마감을 만들었다. 문자 메시지와 SNS로도 여러 마음을 전해 받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알려주었다. 사는 일이 무섭고 허무하게 느껴질 때 그 시간을 어떻게 지나올 수 있는지. 사람이 사람에게 어떤 모습으로 의지와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지.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의 포옹, 사람들의 말, 사람들의 마음이 향하는 곳이 결국엔상실 이후에도 살아가야 할 나의 삶이라는 것을.
그즈음 수미 언니는 자신의 집으로 자주 나를 초대했다. 평소에도 언니는 혼자 사는 나를 기쁘게 자신의 식탁으로 불러주는 사람이었다. “오늘 김치찜을 만드는데 된장을 조금 풀어넣었더니 내가 만든 건데도 너무 맛있네. 밥 먹으러 올래?” “오늘 미역국을 한솥 끓였는데 너 미역국 좋아하잖아. 저녁 먹으러 와.” “시댁에서 생선이랑 나물을 많이 보내주셨어. 오늘 우리 집에 오면 맛있게 생선을 구워주지!” 그리고 한동안 수미 언니의 단골 멘트는 이것이었다. 약속 없으면 밥 먹고 가. 너한테 따뜻한 밥 해주고 싶다.
수미 언니 집으로 가던 날은 손에 꼽을 만큼 추운 날이었다. 가장 두꺼운 외투를 입었음에도 어깨를 잔뜩 움츠리며 걸어야 했다. 몸을 떨며 도착한 집에서는 기분 좋은 훈기가 느껴졌다. 한낮의 햇빛이 잘 머무르는 집이었다. 언니는 갓 지은 밥에 된장찌개와 고기볶음, 나물 반찬으로 푸짐하게 식사를 준비해 주었다. 금세 차려진 음식들이 너무 맛있어 보여 와아 감탄을 했다. 그날 언니가 준비해 준 다정한 식탁 덕분일까. 언니와 함께 밥을 먹는 동안 또다시 마음이 약해져 참고 있던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언니는 밥을 먹다 왜 우느냐고 웃으며 휴지를 건네주었다. 그 웃음에 나도 따라 웃었다.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닦는 나를 보며 언니는 10여 년 전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때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세상이 아무렇지 않게 흘러간다는 게 너무 이상하더라. 얼마 전까지 여기에 살아 있던 사람이 사라져 버렸는데 꽃이 피고 계절도 지나간다는 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화도 나고 그랬어. 그런데있잖아. 10년이 흐르니까 이제는 할머니를 생각하지 않고 사는 날들도 있어. 어떨 땐 할머니랑 지냈던 시간이 오래전 내가 꾼 꿈 같아. 그러다 어느 날엔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불쑥 눈물이 나지. 그렇게 살아지는 거더라. 그러니까 이 시간을 잘 보내보자. 할머니 할아버지는 무엇보다 네가잘 살아가기를, 네가 평안하기를 바라실 거야.”
언니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내게 다가온 슬픔과 안도를 살며시 감싸 안는 마음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언니는 뜬금없이 같이 요가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얼마 전부터 하루에 10분씩 요가를 하고 있는데 몸이 한결 편안해진다며. 좋다고, 그러자고 언니를 따라 거실로 갔다. 겨울의 한낮. 거실 중앙에 자리 잡은 우리는 유튜브로 요가 영상을 보면서 차례차례 동작을 따라 했다. 다리를 쭉 펴고, 허리를 늘리고, 상체를 깊숙이 숙이는 동안 아고고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어떤 동작은 따라 하기도 힘들어 웃음이 났다.
마지막 동작은 정자세로 누워 눈을 감고 이완하는 시간이었다. 영하의 기온에도 햇빛은 맑아 누워 있는 몸과 얼굴 위로 따뜻한 기운이 머물렀다. 이대로 누워 있으면 잠이 들겠지, 생각하는데옆에서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감고 있으니까 햇빛이 주황색으로 느껴지네.”
그러게요, 정말 그렇네요. 대답하곤 주황색으로 느껴지는 햇빛 아래 조금 더 누워 있었다. 그리고 내가 외울 수 있는 유일한 시 하나를 떠올렸다. 한강 시인의 「회복기의 노래」.
이제
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
물으며 누워 있을 때
얼굴에
햇빛이 내렸다
빛이 지나갈 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가만히
마음속으로 시를 읊어보았다. 혼자 하는 기도처럼, 고백처럼. 얼굴에 머무는 햇빛이 잡아본 적 있는 누군가의 따스한 손바닥 같았다. 그러는 동안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정오를 지난 햇빛처럼 이 슬픔도 조금씩 줄어들게 되리라는 걸.그럼에도 아주 사라지지는 않고 표정처럼 말투처럼 내 일부가 되리라는 것. 그리워하는 일에는 언제나 슬픔이 필요하니까.내가 할 일은 그저 살아가는 일이라는 생각을 할 때는 ‘삶은 계속된다’라는 아주 오래된 문장이 햇빛처럼 몸을 어루만져주었다. 마치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된 사람처럼, 내게 살아갈 삶이 있다는 사실에 조용히 놀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 회복이란 그렇게 시작되는 일일지도 몰랐다.
*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한강, 문학과지성사 2013)에 수록된 시 「회복기의 노래」에서 제목을 가져왔음을 밝혀둡니다.
내게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기록하는 노트가 있다. 내가 이 삶을 계속 사랑할 수 있도록 해준 말들을 모아둔 노트다. 지금껏 쓴 많은 글들이 이 노트에서 시작되었다. 다음에 쓰게 될 글 역시 여기에 있다. 세 권의 산문집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 『작별 인사는 아직이에요』 『나의 두 사람』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