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죽음
- 영화 「마스터」(The Master)

정수영(영화인)

6색 무지개가 온 거리를 덮을 듯 펄럭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카스트로 거리에서 당신의 뒷모습을 쫒는다. 우리는 다투었고 당신에게 이해받지 못해 서러운 나는 당분간 당신의 눈과 마주치지 않겠다고 못나게 작정을 한 참이다. 당신은 거리의 초입에 오래된 장승처럼 서 있는 카스트로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로비에는 온통 필립 시모어 호프먼의 얼굴들. 극장에선 한달 전 약물 과다복용으로 죽은 그를 추모하기 위해 긴급 편성한 프로그램이 상영중이다. 우리는 그의 관능과 이성을 사랑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스크린 앞 무대 바닥이 열리더니 파이프 오르간이 솟아오른다. 25년간 이 극장에서 식전연주를 했다는 등이 곱은 노연주자가 익숙한 할리우드 클래식을 연주한다. 자기의 일을 마친 그가 좌중의 환호를 받으며 이번엔 무대 아래로 천천히 꺼져간다. 달리 마법이랴, 연주가 끝나고 영사기가 돌기까지 침묵 속에 자세와 마음을 가다듬는 그 찰나는 분명 마법에 닿아 있었다.

영화 「마스터」(The Master, 2012)에서, 필립 시모어 호프먼은 2차세계대전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미국사회에 유령처럼 출몰한 신흥 종교 ‘코즈’의 교주 랭커스터 토드를 연기한다. 선배들의 작업에서 좋은 것을 가져와 때때로 청출어람을 보이는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은 여기에서도 조너선 드미의 「멜빈과 하워드」(Melvin And Howard, 1980)의 훌륭한 도입부인 모터바이크 시퀀스를 자기 것으로 만든다.

가도 가도 끝이 없어 지평선에 숨이 막히는 황무지. 검고 멋진 모터바이크를 끌고 온 마스터는 이 황무지에서 일행들과 함께 손가락으로 찍은 지점까지 바이크를 타고 갔다 돌아오는 놀이를 하려는 참이다. 먼저 마스터가 희고 큰 몸을 바이크에 싣고 한참을 달리다 돌아온다. 다음은 그의 추종자, 아니 연인이라고 할까, 프레디(호아킨 피닉스)의 차례. 프레디는 올라타기가 무섭게 멀리멀리 가버린다. 손가락으로 찍은 점을 넘어서까지 한참동안 달리는 프레디를 보는 마스터의 얼굴. 화면에 한가득 표정만으로 연민, 호기심, 자부심을 넘어 끝내 파괴적인 소유욕까지 담아내는 그 전대미문의 얼굴을 뒤로하고, 프레디는 마스터를 영영 떠난다. 이제 더 들을 수 없는 대배우의 목소리는 ‘중국행 슬로우 보트’를 따라 흐르고, 아직도 당신의 눈을 들여다볼 용기가 없는 나는 우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자꾸만 고개를 비스듬히 돌려야 했다.

2017. 8. 25